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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여줘

딘캐스딘

죽어가고 있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거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감각에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몸이 움직인다면 자신은 또 다시 정신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어 살인을 저지를 것이며, 결국 그를 잃고 나서야 제 목숨을 끊겠지. 딘은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 제가 죽어야 했다. 피와 함께 숨을 들이쉬며 흔들리는 눈앞의 초점을 맞추려고 애썼다. 
그때 제 시야에 캐스의 발이 보였다. 딘은 고개를 들어올려 캐스를 바라보았다. 제 눈에 비치는 캐스는 힘겨워보였으며, 동시에 무언가 결심한 듯이 바라보았다.
“캐스. 날 쏴…..”
캐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 가만히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딘은 제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꽤나 숨쉬기가 힘겨웠다. 깊게 찔린 건지 저려왔고, 이대로 산다고 해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나, 그들을 내 손으로 죽이는 그 끔찍한 짓을 실현시키고 싶지 않았다.
“캐스…. 제발, 날, 쏴…”
하지만 캐스는 제 말을 여전히 듣지 않은 채, 제게로 다가오더니 저를 기둥에 묶고 있는 밧줄을 풀려고 했다. 딘은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몸을 비틀며 반항도 했지만 캐스는 묵묵히 매듭을 풀며 딘을 기둥에서 벗어나게 했다.
“캐스!! 어서 날 묶어. 날 쏴란 말이야!!”
그때 캐스의 파란 눈이 저를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이, 그 파란 눈에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저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딘, 난 널 사랑한다.”
캐스는 칼을 꺼내들어 칼로 팔을 쭉, 그었고 이내 그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흘렀다. 딘은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이미 제 몸은 피를 갈구했고, 그렇게 갈구하던 피가 제 눈 앞에 있으니 멈추지 못했다. 
딘은 캐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에 떨어지는 피, 상처에서 베어나오는 피들을 모두 입안에 담았다. 그렇게 비릿한 피가, 이리도 달 수가 없었다. 딘은 제가 이제 완전히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피를 마시는 그 순간, 제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딘은 그 순간 바로 그 상처에서 입을 때었고, 캐스에게서 물러났다. 캐스는 피를 너무나 많이 흘린 탓인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제가 저리 만들었다. 저 때문에 인간이 되었고, 그런 저에게 미련하게 피를 내어준 그를 저리 만든 것은 자신이었다. 딘은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제 몸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때 문 밖에서 샘의 목소리가 들렸다.
“캐스! 괜찮아요?? 어서 나와요! … 캐스? 캐스!!”
그때 딘이 입을 열었다.
“샘! 캐스를 데리고 가,…. 그리고 칼을 줘.”
“안 된다!! 샘… 윽, 난 괜찮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된다.”
그 순간 캐스의 말을 자르며 딘이 소리쳤다.
“캐스!!!! ….. 난 이미 빌어먹을 흡혈귀야. 피에 굶주려서 피 없이는 못 사는 놈이라고. 난…. 난, 이렇게 살 수 없어.”
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눈물은 이상하게도 따듯했다. 여전히 제 심장은 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풋사랑 상대는 천사님 2

손에 묻은 허여멀건 액체들을 휴지로 닦고는 손까지 박박 씻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샘은 결국 물을 손에 담아 얼굴을 적셨다. 조금이라도 이 멍한 정신이 깰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샘은 눈을 깜박거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 미끄럼이 보더니 이내 더 이상 이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기에,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 나갔다.
눈을 뜨자마자 제 눈 앞에는 여전히 딘의 옆에 꼭 붙어 있는 캐스였다.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딘 밖에 모르는 캐스를 원망해야하는 건지, 저를 누구보다도 알면서 캐스와 같이 있은 딘을 원망해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샘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샘, 앉아서 먹어라.”
샘은 캐스의 말에 별 말을 하지 않고 식탁의자에 앉아 시리얼과 우유를 그릇에 부었다. 항상 똑같은 식사였다. 질릴만큼 먹고 먹었지만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이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딘이 말했다. 
“잠깐 나갔다가 올 거야. 그러니까 새미, 캐스 잘 잡고 있어.”
딘은 마치 아들에게 갓난아기인 동생을 맡기고 나가는 부모 같이 말했다. 샘은 그런 딘의 말을 반쯤 흘려듣고는 시리얼을 퍼먹었다. 눅눅한 시리얼이 우유까지 만나니 거의 죽이 될 것만 같았다.
또 다시 캐스와 단둘이서만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형이 일부러 자신들을 붙여놓은 것이 분명했다. 딘이 제게 눈짓까지 한 것을 보니 정확했다. 하지만 샘은 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했다. 캐스를 보면 볼 수록 제 속에 있는 공허한 구멍에 더 쎄한 찬 공기가 도는 것처럼, 날붙이에 베인 것처럼 아팠다. 샘은 캐스에게 향했던 눈을 책으로 돌리고는 하던 일을 마저했다. 하지만 계속 제 옆에 있는 캐스가 신경쓰여서 책에 쓰인 까만 잉크들은 전혀 글자로 인식되질 않았다. 샘은 결국 잠시 책에서 눈을 때고 캐스를 바라보았다. 캐스는 아무것도 모른채 가만히 앉아 책을 살피고 있었다. 샘은 이내 다시 눈을 돌려 책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캐스가 시선을 알아챈건지 고개를 들어 샘을 바라보았다. 결국 샘은 눈이 마주쳤고 둘은 그대로 얼어붙은 것 마냥 가만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샘의 노트북에 뜬 알림 때문에 그 시선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알 수 있었다. 제 심장이 폭죽처럼 터질 것만 같았다는 것을.
일부러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가 어색함 때문에 괜히 눈이 마주칠 순간이 잘 없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샘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정말 그저 캐스와 단둘이서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가 조금만 움직여도 굉장히 신경 쓰였다. 물론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좋아서 죽을 것 같았다면 그랬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 제 앞에 캐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샘, 왜 무언가 일이 있는 건가.”
“아, 아뇨. 왜 묻는 거에요?”
“네 표정이 아주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썩은 파이를 본 딘 같았다.”
샘은 캐스의 말에 제 얼굴을 더듬더듬 만졌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농담으로 대답을 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캐스의 말이 신경쓰였다. 자신이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혹시 그게 이상하진 않았는지. 솔직히 말하면 정말 바보 같았다. 샘은 다시 손을 내려 놓고 노트북을 쥐며 다시 찾던 거나 마저 찾기 시작했다. 그때, 제게로 캐스가 다가와서는 리모컨을 내밀었다. 그리고 화면은 살색의 향연을 내비치고 있는 포르노 체널에 맞춰져 있었다.
“리모컨이 움직이지 않는다.”
샘은 당황스러웠다.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너무 적날하게 들리는 신음소리와 찰팍거리는 소리. 솔직히 천사와 볼만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아니 누구와도 이런 것은 같이 봐도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샘은 캐스에게서 리모컨을 받아들어 베터리 부분을 열고는 다시 갈아 끼우곤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체널 버튼은 눌러지지 않고 애먼 볼륨 버튼만 움직였다. 결국 그들은 아주 큰 소리로 나오는 신음을 들어야했고, 샘은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샘, 저 여자는 왜 아파는 건가.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 순간 샘은 너무나도 순진한 표정의 캐스에 이대로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풋사랑 상대는 천사님 1





그래, 완벽히 될리 없는 그저 어린 날의 가벼운 사랑이었다. 애초에 여태까지 제 눈으로 캐스와 딘의 관계를 똑똑히 보아왔는데, 자신에게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이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정말 한심했다. 하지만 막상 놓으려고 하니,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애초에 그 작은 희망을 놓을 생각 따위 없었다는 것이다.



딘이 나가고, 벙커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돌았다. 분명 벙커에는 저와 캐스, 두 명이 같이 있었다. 하지만 캐스는 저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 역시 캐스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니 괜히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2시간을 적막감 속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자, 그제야 샘은 점심이라도 먹어야하니 어쩔 수 없이 캐스에게 말을 걸어야 되는 타이밍이 왔다. 샘은 입만 달싹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캐스에게 말했다.

"캐스, ... 밥 안 먹을 거에요?"

샘은 가만히 캐스를 바라보았고, 캐스는 가만히 샘을 바라보며 눈만 깜박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연한 것을 물은 것 마냥 샘을 바라보았다.

"샘, 나는 어차피 먹어봤자 아무 맛도 느끼지 못 한다."

샘은 그제야 제가 정말 쓸대없는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짧디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샘은 식탁에 앉아 대충 사놓은 음식들을 먹고 있었으며, 캐스는 가만히 앉아 책상 위에 놓인 큐브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와 큐브가 움직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의 식기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따. 어느 누구 하나 먼저 말을 하지 않으니 거의 적막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샘에게로 캐스가 다가오더니 부서진 큐브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마치 부모님에게 혼날 것을 예상하고 잔뜩 긴장한 아이 같았다. 하지만 샘은 그것을 받아 들더니 아무런 반응도 안 하더니 이내 부서진 큐브를 다시 고쳐 캐스에게 내밀었다. 캐스는 그런 샘을 물 미끄럼이 보더니 큐브를 받아 들어 샘의 옆에 앉았다. 

자꾸만 제 옆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 힐끔 힐끔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척 하느라 힘들었다.


그때, 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캐스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에는 딘이 있었다. 딘은 들어오자마자 샘을 힐끗 보더니 탁자 위에 올려진 시리얼을 손 안에 가득 움켜쥐고는 입에 털어넣으며 투덜대었다.

"젠장, 아무것도 못 찾았어. 엄청 멀쩡한 곳이던걸.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예뻤던 걸 제외하면 평범함 그 자체였다고."

샘은 딘의 말에 잔뜩 빗치 페이스를 하며 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딘은 샘의 그런 눈빛에도 뭐가 나쁘냐는 듯 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캐스가 큐브를 다 맞추었는지 다 맞춘 큐브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샘을 바라보았다.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것 마냥 말이다. 샘은 그런 캐스의 눈빛에 마치 엄마라도 되는 것 마냥 살풋 웃으며 짧게 칭찬을 했다. 딘은 그런 둘을 물 미끄럼이 보더니 무언가 눈치라도 챈듯 샘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문쪽으로 갔다.

"잠깐 나갔다가 올게. 둘이 냉전하는 것처럼 싸한 분위기로만 있지마."

샘은 그런 딘의 말을 무시하고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딘은 샘에게 살짝 귓속말을 했다.

"새미, 이 기회에 천사를 좀 확 잡아봐라고."

"딘, 그게 무슨.."

샘은 딘의 말에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딘은 샘의 말을 잘라버리고는 갔다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대로 나가버렸다. 샘은 그런 딘을 가만히 보더니 결국 말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때, 캐스가 가만히 눈을 도르륵 굴리더니 이내 샘을 물 미끄럼이 보았다.

".... 샘, 딘 언제 오는 건가."

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제 형이 한 말 때문에 꽤나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데 그 와중에 이 천사놈은 제 형 밖에 찾질 않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저에게 물으니 괜히 미웠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뻐근하던 몸이 펴지는 듯 했다. 샘은 기지게를 펴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혼자서 있을 캐스가 자꾸만 생각났지만 제가 걱정한다 해서 뭐가 되는 것도 아니기에 샘은 그냥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포근한 이불에 얼굴을 비비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곤한 하루였다.

그때, 빌어먹게도 방음이 되지 않은 벽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막감이 감도는 방안 때문에 그 소리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아주 잘 들렸다. 딘과 캐스였다.

"캐스, 조금만 더 입을 벌려봐."

"... 이렇,게 말인가.."

"자, 그대로 넘기는 거야."

작은 말소리 사이로 들리는 약한 숨소리가 괜히 포르노라도 보는 것 같은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제 형과 천사가 나오는 포르노라, 어디서 하나 쯤은 있을 것 같다. 벽 너머로 들리는 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으며 조금은 나긋했다. 마치 평소 여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샘은 괜히 딘의 앞에서 딘이 말하는대로 곧이 곧대로 모든 것을 하고 있을 캐스를 생각하니, 평소보다 더 말도 안 되는 망상들이 떠올랐다. 샘은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 같았지만 몸은 왜 이리도 정직한 건지 가만히 딘이 말하는대로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넘기고 있을 캐스를 떠올리니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왔다. 샘은 마른세수를 하며 욕을 곱씹어넘겼다. 정말 바보 같았다. 벽 너머 딴 사람과 있는 상대를 생각하며 아랫도리를 뻐근하게 새우다니, 스스로가 비참했다. 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둘 수는 없었기에 결국 샘은 짧게 한숨을 내 쉬며 화장실로 갔다.


"캐스, 좀 더 마셔 봐라니까. 이게 얼마나 좋은 술인데."

하지만 캐스는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 많이 마셨다. 벌써 가득 찼던 병이 반이나 비었다 딘. 어서 가서 넌 쉬어라."

"새미랑은 다를 줄 알았는데, 왜 똑같이 너드처럼 굴고 그러는 거야, 천사님."

딘의 비꼬는 말투에도 캐스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