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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95253

사랑하는 이여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진단메이커: 에릭찰스






 너를 사랑했다. 두서 없이 바로 내뱉은 한마디가 너무나 간결하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이 말 한마디로 두서 없이도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랑'했다'기 보단 사랑'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난 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악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널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네가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난 내 선택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이것은 널 증오해서도 널 거스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난 단지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두는 체스는 안 그래도 끊긴 대화를 더 정적으로 몰아세웠다. 아니 애초에 둘은 서로 대화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찰스는 제 하얀 체스말을 옮겨 놓고는 손을 뒤로 물렸다. 에릭은 찰스가 놓은 체스말을 가만히 살펴보더니 망설임 없이 말을 움직였다. 둘이서 체스를 시작하면 거의 끝이 나지 않았다. 마치 진짜 서로가 싸우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끝까지 찰스는 막았고, 에릭은 앞으로 내뻗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열리자 홍차 두 잔이 놓인 쟁반을 든 행크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행크는 두 사람의 정적을 깨지 않게 아무 말없이 들어가 찻잔을 각각 둘의 옆에 놓아두고는 방을 나갔다.

 "여전하네."

 "변했지."

 둘은 서로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무엇이 여전하며, 무엇이 변한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에릭은 제 차례가 오자 또 다시 앞으로 밀어붙였다. 

 "에릭. 조금 더, 바뀌어주겠나."

 찰스는 앞으로 다가오는 에릭의 체스말에 제 말을 뒤로 물리며 말했다.

 "난 바뀔 마음이 없어."

 에릭은 찰스의 말 앞으로 제 말을 앞으로 내새우며 말했다. 

 "자넨 바뀔 수 있어. 아니 바뀌지 않아도 자넨 이곳에 있을 수 있어."

 "너와 함께?"
 찰스는 에릭의 말에 체스말을 들고 있던 손이 멈칫했다. 에릭은 그런 찰스의 손을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네가 없다면 소용이 없어. 난 찰스, 너만 필요하니까. 이곳의 모든 것도 다 필요 없어."

 그 순간 쇠붙이가 체스판 위로 날아들어 찰스의 말 몇 개를 찍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찰스는 눈만 깜박거리며 여전히 말을 놓지 않았다. 

 ".. 네가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어."

 에릭은 찰스의 말을 잡아 체스판 한 가운데에 두었다. 찰스는 아무말도 없이 그저 파란 눈으로 에릭을 바라보았다. 에릭은 그 파란 눈이 싫었다. 그렇게 증오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옹할 수 있다는 그 눈이 싫었다. 하지만 그 파란 눈을 보고 찰스를 사랑했다. 에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방문이 닫히자 찰스는 체스판을 물 미끄럼이 보더니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대었다. 온 몸이 푹 잠기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왔다간 내 마음에 

나 혼자 앉아 나는 가끔 울고 있다

당신이 새겨 놓은 흔적을 보면 

얼마나 외롭게 내게 머물다 갔을까

나는 미안해서 눈물이 나고

당신은 아파서 울었을 것이다

/이근대, 꽃은 미쳐야 핀다

산옥잠화

※커크술루 합작 게시물※


산옥잠화: 사랑의 망각






사랑하면 진실을 망각하고 만다. 제가 꿈꾸는 이 상상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실은 이미 망각된 채 억지로 제 기억 속에서 숨겨둔다. 언젠가는 제게 다가올 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까만 뒤통수를 볼 때마다 손끝이 저려왔다. 마치 그만두라는 듯이.

커크는 야간교대를 하곤 미리 타온 커피를 홀짝거렸다. 쓰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때 순간적으로 손에 힘이라도 잠깐 풀린 건지 커피를 조금 제 옷에 쏟고 말았다. 하지만 커크는 손으로 탁탁 털고는 개의치 않았다. 함교 내에는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다들 불편한 기색 없이 묵묵히 제 일을 해나갔다. 커크는 제 앞에 있는 항해사와 조타수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매일 보는 모습인데도 항상 조금의 변함도 없었다. 커크는 눈을 돌려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작고 여려보였다. 그 나이 대 보다도 여려 보이는 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큰 함선을 모는 조타수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술루는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어른스러웠다. 딱히 그 나이 대가 철이 없고 난잡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저 나이 대에 이렇게 큰 함선을 모는 것은 드문 일이며 특히나 결혼을 하고 애까지 있다는 것은 더욱 더 드문 일이었다. 화면 위에 놓인 딸아이의 사진을 보면 술루가 얼마나 아이를 보고 싶어 하고 아이를 사랑하는지는 아마 크루 모두가 알고 있을 법했다.

 

술루가 처음 결혼을 한다고 말하던 날, 아마도 모두가 울었을 것이다. 아니 모두라기 보단 술루를 좋아하던 이들이 울었을 것이다. 앞에서는 모두가 축하를 하고 축배까지 들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지만 그날 결혼식이 끝나고 울어버렸을 것이다. 마치 시도도 못해보고 끝나버린 풋사랑에 아파하는 유년처럼 말이다. 커크도 그렇게 울었다. 하지만 그가 우는 이유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시도도 못하고 끝났던 것이 아니라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사랑이었으니 말이다.

원망하고 원대했다. 갑자기 느닷없이 좋아하던 인형을 이사 하며 버리는 것 마냥 이별을 통보하는 술루를 증오하고 어깨를 잡으며 왜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를 그만 두었다. 커크는 술루의 이별통보에 깔끔히 이별을 해주었고 남들이 안다면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커크는 얼굴 표정하나 흐리지 않고 웃으며 그들의 결혼식에 가 결혼을 축하했다. 그 둘이 서로 끌어안을 때 맞부딪히며 박수를 친 손이 빨개질 정도로 커크는 웃으며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저 조타수도 결혼을 했네. , 넌 어떻게 할 거야.... ?”

Damn it! 본즈는 커크를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가 그제야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본즈는 왜 그러냐며 물을까도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저 고개를 돌려주었다.

 

그날에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평범했다. 떠나 버린 사랑을 보고 울 나이는 지난 것이다. 이젠 모두 잊었다. 아니 묻었다. 그를 위해 묻은 것이다. 이미 딸까지 있는 그를 위해, 그리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를 위해.

...

라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난 아직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 미련스럽게 뒤에서 그의 남편을 증오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안 주는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참 유치하고 졸렬했다. 제 옆에 있었음에도 쉽게 놓쳐버리고, 이제야 후회하며 그들을 미워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정말로 이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말고 잊고 싶어도 그를 너무 사랑해서, 매일 잠자리 상대가 바뀌는 나 따위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라서. 몇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난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오전의 브리지는 역시 사람들이 없었다. 커크는 커피를 홀짝이며 함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옆길에서 술루가 걸어 나왔다. 여전히 술루는 참 예뻤다. 지금의 나이도 꽤나 적지만 그는 그 나이보다도 훨씬 어려 보였다. 하지만 역시 조타수라는 직책인 만큼 강단 있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긴 했다.

, 함장님.”

술루? 오늘 조금 늦게 왔네.”

술루는 머리를 쓸어 귓가를 긁으며 웃어보였다. 평소에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조타수의 흠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커크는 웃음을 멈추고 술루를 바라보았다. 술루는 제 웃음에 덩달아 피식 웃고 있었다.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그 웃음은 여전히 제 마음을 녹이고 열심히 뛰게 만들었다. 커크는 같이 웃어주고는 함교로 들어갔다.

새삼스레 내 마음이 얼마나 이심한지 알았다. 웃어주는 것 하나로 그간 미워하던 마음이 녹아들어버렸다니.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졌다. 이젠 이렇게 마음이 흔들려봤자 가지가 꺾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쩔 수는 없었다. 난 그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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